지리산 아래에서 몇 달 지낸 적이 있다. 읍내 곳곳이 익숙해질 무렵 신문에 섞여 전단지 한 장이 날아왔다. 섬진강 자전거 대회.
자전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백 명에게 돌아가는 경품이 푸짐해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선풍기에 전기밥솥, 일등은 네 발 오토바이 한 대.
읍내 자전거 타는 사람을 다 모아야 백 명이 될까 싶었고 자전거를 오래 탄 내가 그중에 설마 입상권이 되지 못할까 라는 건방진 생각도 하게 되었다.
대회 날이 되어 헬멧에 고글, 몸에 달라붙는 자전거 복장을 갖추고 나가 보니 웬걸, 나 혼자 울긋불긋 요란했고 바구니 실은 아주머니, 삽 꽂은 아저씨, 분홍색 아가씨 자전거까지 마을 자전거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일등을 뽑지 않으니까 천천히 재미있게 다녀오세요.”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모두 웃고 떠들며 섬진강변을 달렸다. 일등을 뽑지 않으니 줄은 끝 모르게 길어졌지만 한 대 한 대 골인 지점에 들어올 때마다 환영하는 노인회 사물놀이패의 북장구 소리는 지치지도 않고 흥겨웠다.
처음만 당황했을 뿐 곧 섬진강 자전거 대회를 즐기게 되었다. 일등을 뽑지 않는 대회, 모두 다 웃으며 강바람을 맞는 대회인 것이다. 흥분한 초등학생이 마구 달리다가 쥐가 나는 바람에 구급차에서 치료를 받은 게 전부, 다치는 사람 없이 즐겁게 자전거 대회가 끝났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온 아주머니가 경품 네발 오토바이를 탔다. 나머지 경품들도 모두 주인을 찾아갔지만 나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근처 중학생들이 수십 명 몰려와 경쟁률이 높아져서였다.
대회를 마친 자전거들이 마을 마을 흩어지는 모습은 눈이 따뜻해질 만큼 정다웠다. 내년에 함께 달릴 수 있기를 나도 모르게 소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은 팔순의 흰 수염 할아버지가 타고 달린 삼십 년 된 자전거다. 나도 그렇게 자전거를 타며 나이 들고 싶다.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http://www.positive.co.kr/good/71343_48_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