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스치면 우연이지만 두 번 눈여겨보면 인연이다. 직접 찾아간다면 필연이 된다.
지난 팔월,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낮이었지만 비행 중간에 실내등이 꺼지고 창을 모두 내리게 되었다. 대충 자다가 밖이 궁금해서 담요로 빛을 가리고 창을 살짝 열었다.
명순응이 된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몇 년 전에도 이번처럼 햇빛 가리개를 열었다가 우연히 보았던 강, 독특하고 웅장해서 잊을 수 없었던 그 강이 다시 보였다.
사행천이다. 거대한 용이 몸부림치듯 강은 좌우로 급격히 휘어지며 북극해를 향해 끝없이 뻗어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십 킬로미터 상공의 비행기가 오히려 왜소해 보이는 크기였다. 나는 신화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다 보면 나쁜 일이 연이어 닥친다는 걸 알게 된다. 내게는 올해가 그런 해였다. 나중에는 어떤 소식에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버티기에도 지쳐 버린 마음은 무엇을 생각해도 무덤덤할 뿐이었다.
몇 년 전에 끊은 술 생각이 간절해지던 찰나에 문득 그 강을 떠올렸다. 나는 세계 지도 책을 펼쳤다. 인터넷 지도로도 강을 찾았다. 러시아의 오비 강일까 싶었지만 이르티시 강이 더 닮은 듯했다.
나는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한국에서 이르티시 강으로 가는 팔천 킬로미터의 여정.
몇 년 뒤, 크고 작은 숙제를 얼추 끝내고 동해에서 떠나는 블라디보스토크행 페리에 작은 오토바이를 실을 생각이다. 이르티시 강가의 둔덕에 앉아 높이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고 싶다.
가슴 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가슴이 뛴다면 남은 시간도 문제없다.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http://www.positive.co.kr/good/71345_48_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