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두 학생이 연구실에 찾아왔습니다.
“저희 오늘 백 일 되었습니다, 100원 주세요.”
“좋은 일이구나.” 나는 진심으로 축하를 합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두 젊은이가 서로의 마음을 나눠 갖기로 하였으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겠는지요. 인생의 시라 부를 만합니다.
나는 백 원 동전 하나를 그들에게 줍니다.
반짝. 동전도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두 학생이 환하게 웃으며 받습니다.
나는 시집 한 권을 그들에게 선물로 줍니다.
그들이 나를 찾아온 것은 백 원 동전보다 이 시집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시집 첫 장에 이렇게 적습니다.
“100일을 축하하는구나. 500일에도 꼭 찾아오렴.
오백 원 동전과 시집 열권을 줄 터이니.”
둘은 박수를 치며 좋아합니다.
둘이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며칠 전 읽은 기사 하나가 떠오르는군요.
공군을 제대하는 한 친구가 자신을 기다려 준 여자 친구를 위해
신촌 거리에서 꽃신을 신겨 주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내용입니다.
700일을 기다린 셈이지요.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백 원 동전과 시집을 받아 간 청춘은 여럿인데
오백 원과 열 권의 시집을 찾아간 커플은 아직 없습니다.

곽재구 님 | 시인

곽재구 님은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순천대 문예 창작학과에서 시를 강의합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사평역에서》, 《와온 바다》, 산문집 《곽재구의 포구 기행》, 《우리가 사랑한 1초들》 등이 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http://www.positive.co.kr/good/71387_48_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