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패스는 빠르고 편리합니다. 통행권을 뽑아 주시기 바랍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맨 처음 듣는 말이다. 아가씨의 밝고 활달한 목소리가 좋다. 조금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통행권을 뽑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구절이다. 어차피 통행권을 뽑으려 멈춰 섰으니 다른 인사말, “아름다운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혹은 “행복한 시간 되세요.” 같은 말이 이어지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소중한 하루를 하이패스가 기억하겠습니다.”와 같은세련된 인사가 나온다면 운전자는 퍽 기쁠 것이다.
“통행권을 뽑아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는 '통행권을 뽑으려면 불편하니 하이패스 단말기를 하나 구입하시지요.'라는 의미로 들린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통행권을 뽑는 것이 내겐 하나도 귀찮지 않다. 오히려 소중한 시간이다. 통행권을 뽑는 순간 나는 '오늘도 무사히!' 하고 짧은 기도를 한다. '오늘도 좋은 일이 기다리기를!' 하고 기도할 때도 있다. 그렇게 기도하면 정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하이패스 단말기를 설치하면 내 짧은 기도 시간은 사라질 것이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따스하게 응시하는 것은 시간의 길고 짧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목적지에 도달해 요금을 낼 때 요금 받는 이에게 인사를 한다.
“식사하셨어요? 바람 좋은 날이네요.”
부스 안의 요금 받는 이가 환하게 웃는다.
“좋은 일 있나요?”
“손님이 인사해 주니 좋은 일이지요.”
짧은 인사지만 이렇게 말하는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작은 강물이 흐른다.
하이패스가 필요한 이에게는 분명 효율적인 제도일 것이다. 응급 구호 차량이나 사고 수습 차량 사업상 급한 용무에 효과적으로 쓰일 것이다. 그러나 길 위의 모든 사람이 다 빠르고 편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천천히 생을 관조하고 음미하는 것. 어찌 철학자에게만 소용되는 지혜일 것인가. 우리 모두 너무 급하고 편리하게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가. 조금 느리게 타인을 배려하며 길 위의 시간을 쓴다면 아름답지 않겠는가.
작은 요금소 하나에는 하루 24시간 3교대로 근무하는 세 명의 일자리가 들어 있다. 모든 톨게이트가 무인 시스템을 바뀐다면 끔찍한 일이다. 길 위의 당신 조금 천천히 느리게 가자. 통행권을 뽑을 때 이것이 소중한 오늘의 한 순간이라고 생각하자. 요금을 낼 때 인사 한마디를 건네며 우리가 서로 인간이었음을 잠시 느끼고 짧은 눈인사라도 나누자.

곽재구 님 | 시인

곽재구 님은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순천대 문예 창작학과에서 시를 강의합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사평역에서》, 《와온 바다》, 산문집 《곽재구의 포구 기행》, 《우리가 사랑한 1초들》 등이 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http://www.positive.co.kr/good/71389_48_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