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는 안 좋은데 입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어른들에겐 술과 담배, 아이들에겐 과자다.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인생의 즐거움을 뺏을 수 없어 가끔 인심을 쓴다. 입맛도 유행 따라 변하는 거라 아이들은 아빠가 골라 주는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혼자 먹게 되는 과자가 있다. 샤브레를 보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어릴 적 지리산 밑 외갓집에 갔을 때였다. 어머니와 함께 혼자 사시는 친척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애기가 애기를 낳아 왔다며 어머니를 쓰다듬었고 갓 나온 새끼 고양이를 받듯 나를 어루만졌다.
어머니가 부엌에 간 사이 할머니가 무릎을 쳤다. 애기 손님이 왔는데 정신이 없어서 대접을 못했다며 주춤주춤 벽장문을 열고 더듬더듬 과자를 찾아냈다. 할머니는 절반 정도 남은 샤브레를 꺼냈다. 아껴 놓은 거라고, 다 먹으라고 할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샤브레는 이름처럼 모래를 뭉친 듯 거칠지만 톡 부러뜨려 씹으면 달콤하게 녹는 과자다. 버터 향이 은근해서 군침이 돈다.
하지만 할머니의 과자는 오래되어 눅눅했고 향도 희미했다.
“어여 먹어, 어여!”
할머니가 재촉했지만 나는 과자를 먹을 수 없었다. 과자 뒷면에 초록색 곰팡이가 여기저기 자라 있었다. 다른 걸 골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과자를 손가락으로 부쉈다. 어떻게든 소리를 내려고 힘주어 가루로 만들었다. 할머니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웃음은 할머니의 마음처럼 따뜻했다. 할머니는 남은 과자를 내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다음에 또 놀러 오라며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더듬었다.
그 집에 다시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샤브레를 먹을 때면 눈을 감는다. 평생 캄캄한 세상을 살았던 할머니에게는 이 맛이 몇 배나 더 달콤했을 것이다.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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