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원(多利園)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다리원에서 혼자 짜장면을 먹을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 식당 이름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정원. 짜장면집 이름으로 근사하지 아니한가.
다리원에서 식사를 할 때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다. 나도 세상에 좀 유익한 사람이 되어야할 텐데.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에 많이 적었지만 점점 그 생각이 옅어져 간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시간들을 생의 끝까지 끌고 갈 것만 같다. 혼자 다리원에서 짜장면을 먹다 보면 마음 안이 조금씩 어두워지기도 한다.
어젯밤 다리원에서 짜장면을 먹는데 아는 사람이 들어왔다.
내가 늘 가는 카센터의 젊은 기사다. 기사가 먼저 나를 보고 눈인사를 했다. 기사에게 일행이 있었다. 스물 한두 살 되었을까. 어려 보이는 아내와 아이 둘. 키 작고, 피부가 가무잡잡하고, 눈빛이 초롱초롱 맑은 그의 아내를 누군가의 그림 속에서 본 것 같았다. 월등 민호네 집 텃밭에 핀 진보라색의 가지꽃 초롱을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 하나는 혼자 걸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걷지 못한다. 카운터 아가씨가 걷지 못하는 아이를 안아 주며 귀여워했다. 그들이 짜장면 셋을 시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녁 여덟 시 5분의 시간이 조금 슬퍼졌다. 짜장면 말고 탕수육이나 잡채밥을 시켰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릇을 들고 나무젓가락으로 마지막 짜장면 소스를 훌훌 들이켰다. 물 한 잔을 마시고 계산대로 걸어가 아가씨에게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얘기했다.
“저기 저 테이블의 식구들 내가 늘 가는 카센터 사람인데 함께 계산해 줘요.”
아가씨가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가 큰아버지 집이에요. 계산할 필요가 없어요.”
아가씨와 카센터의 기사는 사촌 오누이였다. 나는 조금 멋쩍어 하며 다리원을 나섰다. 저 가족에게 짜장면집 큰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평생 짜장면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을 테니. 밤하늘에 맑은 반달이 떴다.

곽재구 님 | 시인

곽재구 님은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순천대 문예 창작학과에서 시를 강의합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사평역에서》, 《와온 바다》, 산문집 《곽재구의 포구 기행》, 《우리가 사랑한 1초들》 등이 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http://www.positive.co.kr/good/71390_48_136